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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 영양제에서 귀뚜라미 사료까지...미래 먹거리로 변신하는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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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Date
2017-06-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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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산업, 임업, 수산업 등 1차산업이 조용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쌀값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가 식용 곤충을 키워 활로를 찾는가 하면, 소고기보다 비싼 고품질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축산기업이 고급 식당가를 파고들고 있다. 또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아침에 수확한 채소를 저녁 밥상에 올릴 수 있게 하는 O2O 서비스도 1차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부가가치 낮은 사업으로만 여겨지던 1차산업에서 신성장동력이 나올 가능성을 짚어봤다.(편집자)

지난달 26일 전라북도 완주군 삼락의 굼벵이 농장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굼벵이(꽃벵이)가 사육장에서 크고 있다.
▲ 지난달 26일 전라북도 완주군 삼락의 굼벵이 농장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굼벵이(꽃벵이)가 사육장에서 크고 있다.
지난달 26일 전라북도 완주군 농업회사법인 삼락이 운영하는 굼벵이 농장. 3개 건물에 굼벵이 먹이로 쓰일 톱밥을 발효하는 공간과 굼벵이 산란실, 사육실, 동면실 등이 들어서 있었다. 사육실에 들어서자 반투명 플라스틱 통에 갈색 톱밥이 가득 차 있었다. 사육실 온도는 26도, 습도는 75%로 다소 높게 유지되고 있었다.

플라스틱통 뚜껑을 열자 톱밥이 숨을 쉬듯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톱밥 속에서 수십마리의 굼벵이들이 톱밥을 먹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굼벵이들은 나무를 파먹으며 자란다. 산란통에는 굼벵이 성장에 필요한 것들을 배합해 발효시킨 참나무 톱밥이 채워져있다.

손으로 톱밥을 퍼내자 숨어있던 2~3cm 크기의 하얀색 굼벵이들이 꿈틀대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 굼벵이가 다 자라 성충이 되면 흰점박이꽃무지가 된다. 이 굼벵이는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꽃벵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른다. 한남호 삼락 대표는 “최근 식용 곤충 시장이 농촌의 새 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사육과 가공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하면 농가의 새 수익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농축산 산업 영역이 곤충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동안 곤충은 주로 지역축제와 학습·애완 용도로 유통됐지만, 최근에는 식재료로 주목받는다. 정부는 국내 곤충식품시장이 2015년 60억원 규모에서 2020년 1014억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농가에서도 곤충이 미래 먹거리가 될 경우 농가 수입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 건새우같은 맛… “혈액 순환 개선에 효과”

살아있는 꽃벵이를 바로 먹을 수는 없다. 성충이 되기 전 45일 정도 키운 꽃벵이를 식용으로 사용하는데, 생물의 경우 독성이 있을 수 있어 이를 없애는 별도의 ‘절식’ 과정을 거친다. 꽃벵이에게 이틀 동안 찹쌀만 먹인 뒤 3일 동안 굶기고, 꽃벵이 몸 속에 있는 노폐물과 배설물이 밖으로 빠져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속을 비운 꽃벵이를 건조하고 열로 쪄내면 바삭한 상태가 된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꽃벵이에서 분리한 물질은 혈전 치유와 혈액 순환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실제로 건조된 꽃벵이를 먹어보았다. 건조된 꽃벵이는 살아있을 때보다 약 3분의 1크기로 줄어 가벼웠다. 한 마리를 입에 넣어 씹자 ‘바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흡사 건조 새우를 먹는 것 같았다. 건조 새우와 달리 기름기는 없었다. 다만, 목구멍으로 꽃벵이를 삼킬 때 노린내가 살짝 풍겼다.

건조한 상태의 꽃벵이는 건새우 맛이 났다(사진 위). 꽃벵이는 가루로 만들어 환 형태의 영양제로 만들어 판매한다. /사진=전성필 기자.
▲ 건조한 상태의 꽃벵이는 건새우 맛이 났다(사진 위). 꽃벵이는 가루로 만들어 환 형태의 영양제로 만들어 판매한다. /사진=전성필 기자.
건조된 꽃벵이는 가루로 만들거나 환 형태로 만들어 먹는다. 한남호 대표는 “꽃벵이는 전체적으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지만 애벌레 형태가 남아 있으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어 가루로 갈아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작년에는 약 2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제품 상용화 단계라 올해부터 매출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20년 2조원대 시장으로 성장”…다양한 식용곤충 제품 출시 중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작년 식용곤충이 단백질, 비타민, 불포화지방산 등 영양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식량난을 해결할 대안이라며 ‘미래의 식량’으로 지정했다. 농촌진흥청이 건조한 벼메뚜기 100g과 소고기 100g의 단백질 함량을 비교한 결과 벼메뚜기 단백질 함량이 약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곤충을 가공하는 기술이 발전할 경우 곤충이 영양 측면에서 효율적인 식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11년 1680억원 규모였던 곤충시장 규모가 2015년 3039억, 지난해 9000억원으로 커졌다. 2년 동안 3배가량 성장한 셈이다. 농촌진흥청은 2020년 2조원대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가운데 사료, 연구, 양봉, 애완 등을 제외한 곤충식품시장 규모는 2015년 60억원에서 2020년 1000억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해 고소애, 쌍별이(쌍별귀뚜라미), 꽃벵이(흰점박이꽃무지 유충), 장수애 등 전통적으로 식용으로 쓰이던 곤충 4종을 일반식품원료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곤충을 취급하는 농가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약 150개밖에 없었던 식용곤충 취급 농가는 지난해 약 다섯배 수준인 800여개로 늘었다.

식용곤충을 활용한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식용곤충인 갈색거저리를 넣어 만든 순대 제품이 출시되는가 하면, 갈색거저리 분말로 만든 과자도 만들어졌다. 한 농업회사법인은 귀뚜라미 분말을 넣은 면(麵) 개발에 나섰고, 장수애(장수풍뎅이 유충)를 이용한 액기스 제품을 개발하는 농가도 있다.

경기도 화성시 크리켓팜 귀뚜라미 농장 모습. 사육장(흰색 플라스틱통) 안에 식용 귀뚜라미가 수십마리씩 자라고 있다. /사진=전성필 기자.
▲ 경기도 화성시 크리켓팜 귀뚜라미 농장 모습. 사육장(흰색 플라스틱통) 안에 식용 귀뚜라미가 수십마리씩 자라고 있다. /사진=전성필 기자.
사람이 먹는 음식 외에 반려동물의 사료로도 쓰인다. 27일찾은 경기도 화성시 크리켓팜 귀뚜라미 농장에서는 약 45일동안 성장시킨 귀뚜라미를 1~2일 동안 절식 과정을 거친 후 세척해 쪄서 말려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이 귀뚜라미는 파충류의 먹이로 쓰이기 때문에 대부분 살아있는 상태로 판매가 된다. 200마리에 1만5000원 수준이다. 일부 귀뚜라미는 가루 형태의 분말로 만들어 반려동물용 사료로 가공한다.

◆ ‘가성비’ 좋아 대기업도 눈독 들여…혐오·거부감 극복이 과제

곤충은 사육하는데 소나 돼지 등 다른 축산업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장점이 있다. 좁은 공간에서 키울 수 있고, 적은 사료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같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는데 필요로 하는 사료의 양은 소나 돼지의 10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성충이 되는데까지 걸리는 기간도 2개월 정도로 출산부터 도축 후 출하까지 약 10개월이 걸리는 돼지보다 생산 효율성도 높다. 다만 건조나 가공 과정에서 20~30% 정도 무게 손실이 발생하는 점은 단점이다.

이 같은 효율성 때문에 일반 농가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앞다퉈 식용곤충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식용곤충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식용곤충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곤충사육과 원료소재 개발을 사업방향으로 잡았다. 대부분의 식용곤충이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해 식용곤충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식품연구소에서 대량사육, 원료소재 개발 등 관련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며 “개발을 마치면 사육농가에 기술을 전달해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상그룹은 계열사인 정풍을 통해 곤충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풍은 원료의 추출, 농축기술을 기반으로 가정간편식과 분말, 소스류 등을 제조하는 회사로 지난해 5월 고소애(갈색거저리애벌레) 호박스프, 고소애 양송이스프 등 고소애를 원료로 한 레토르트 시제품을 선보였다. 정풍은 현재 분말, 액상추출물, 단백질당(아미노스위트)등 곤충을 다양한 제형으로 가공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식용 원재료로 삼기에는 곤충하면 떠오르는 거부감이나 혐오감은 극복해야할 큰 걸림돌이다. 곤충하면 징그러운 모습을 떠올리거나 ‘먹지 못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괴짜’들만 먹는 음식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양소가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먹을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한 식용곤충 산업의 성장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식용 제품을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식용곤충을 허용해 거부감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식용 곤충을 활용해 먹거리 제품을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아직 소비자 인식과 인지도가 좋지 않다”며 “곤충 형태를 살린 완제품 출시보다는 식용곤충을 기초소재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